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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의 진실

by 檀童稗說 2023. 12. 17.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即太伯今妙香山)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제석(帝釋)을 말한다)의 서자인 환웅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웅(雄)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즉 태백은 지금의 묘향산이다.)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하고 이에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악(善惡) 등 무릇 인간의 삼백육십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靈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熊女者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壇君王儉
이때에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神) 환웅에게 기도하되 화(化)하여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이에 신(神) 환웅은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모습이 될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받아서 먹어, 기(忌)한 지 삼칠일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금기하지 못해서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매양 단수(壇樹) 아래서 잉태하기를 빌었다. 웅이 이에 잠시 변하여 그녀와 혼인하였다.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壇君王儉)이라 하였다. - 삼국유사 권제 1 기이(紀異) 제1(第一) 중에서

삼국유사 권제1 기이 권제1 출처: 영남일보


지금으로부터 약 만여 년 전 사람들은 구석기시대를 마치고 신석기시대로 돌입하는 엄청난 변화를 이뤄낸다. 떠돌아다니며 수렵과 채취로 먹고살던 생활을 끝내고 농경과 목축을 하며 한 곳에 정착해 생활하는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변화는 동물들처럼 떠돌아다니던 사내들이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아이들을 홀로 키워야 했던 여자들이 이제는 남자들과 함께 같이 아이들을 양육한다는 걸 의미했다. 아버지가 각각 다르던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아이들이 더 이상 당연시 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뜻하기도 했다. 엄마가 누구냐로 시작하는 성(姓)은 이제 그럼 아버지는 누구냐는 씨(氏)가 추가되어 아이들은 이름 앞에 성과 씨, 성씨(姓氏)를 갖게 되었다. 성씨(姓氏)는 성(姓)을 높여 부르는 말이 아니다. 모계사회라고 불리던, 다른 웬만한 동물들도 개나 소나 모두 한다던 모계사회에서 벗어나 부계사회로 접어든 것이었다. 긴팔원숭이과(科)와 사람과(科) 이렇게 둘로 나누는, 총 2과(科) 8 속(屬) 26종(種)이나 되는 꼬리가 없는 유인원(類人猿 Apes)중 수컷이 새끼들과 정기적으로 사회적 유대를 발전시키는 건 아프리카 루웬조리 산맥이 있는 르완다에 사는 산악 고릴라와 사람뿐이다라고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스테이시 로젠바움 박사 연구팀은 2018년 10월 15일 자 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논문에서 밝혔다.


마을이란 이름으로 옹기종기 수준으로라도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된 건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일이었다. 달의 산 루왜은조리에서 지유(地乳)가 아닌 선악과(善惡果) 포도를 먹어 오미(五味)의 변(變)이 발발(勃發)해 역병이 돌자 어쩔 수 없이 등지고 떠나야 했던 배달(倍達, 背達)의 역사 이후로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것은 꿈도 꿔보지 못한 일이었다. 농경과 목축을 하기 시작했다는, 신석기 혁명이라 불리는 이 사변(事變)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여인에겐 남편을 아이들에겐 아비를 사람들에겐 가족과 이웃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후일 농업혁명이라 불리는 이 대변화는 무엇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던 걸까? 단순히 빙하기(氷河期)라는 홍적세(洪績世, Pleistocene)가 끝나고 오늘날과 비슷한 기후를 가진 충적세(沖積世 Holocene Epoch) 기후기(氣候期)가 시작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산(山)과 산(山)사이에 생기는 골짜기엔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水)들이 흘러들었고 살아가는데 그 물(水)이 반드시 필요했던 사람들이 골짜기에 흐르는 물을 쫓아 모여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역병(疫病)이 무서워 물만 챙기고는 부리나케 흩어졌던 사람들이 그대로 골짜기 물가 가까운 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가족(家族)과 이웃이란 이름으로 모여 집단을 이루며 살기 시작한 것이었다. 골짜기 물가로 모여들어 마을이란, 고을이란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저 따뜻해져서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현대 인류문명이 겪었던 비상사태는 만여 년 전 그때의 혁명적 삶의 변화가 무엇 때문인지 가늠하게 해 준다. 역병(疫病)이라 불리는, 사람에 의해 퍼지는 전염병(傳染病)의 창궐(猖獗)을 막고 치료해 줄 약제(藥劑)가 등장한 것이었다. 찻잎이었다. 찾으러 다닐 필요 없는 그곳에 있는지 아는 차(茶) 나무 때문이었다. 우리 민족이 마을과 고을을 혼용(混用)하는 것은 그구루(Ggulu)와 무구루(Mugulu)를 같은 뜻으로 발음만 혼용(混用)했던 루왜은조리에서의 습관 때문이었다. 마을과 고을은 울타리(城)로 보호받는 지역이라는 동일한 말이다. 울타리(城: 溝漊 gulu)로 보호받던 찻잎을 건조시키던 시설물인 마(麻)와 가(榢)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전남 화순 대곡리에서 발굴된 청동 유물 일괄. 출처:위키미디어


단군신화라는 이름으로 우리 민족에게 창세신화(創世神話)처럼 각인된 삼국유사에 실린 이 기이 편(紀異篇)의 글은 그러나 창세신화가 아니었다. 삼국유사 기이 편에 실린 환웅과 단군신화(神話)는 창세신화가 가지고 있어야 할 천지개벽(天地開闢) 그리고 해와 달의 조정(調整) 같은 필수적인 신화소(神話素)들이 없었다. 단군 신화라는 이름보다는 환웅 신화라고 해야 더 올바를 이 신화 아닌 기사(紀事)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그래서 분명했다.  우리 민족이 차(茶)나무의 하얀 꽃과 잎, 열매의 생김새를 묘사한 천부삼인(天符三印)을 들고 다니며 어떤 나무가 차(茶)나무인지 막연히 찾아다니는 수준이 아니라 이제는 차(茶)나무가 어떤 지역에서 자라고 있을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어떤 원리로 그토록 희귀한 차(茶) 나무가 생장(生長)하는지 알고 그래서 어떤 곳에 가야 차(茶) 나무를 확실하게 발견할 수 있는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음을 만방에 선포하는 것이었다.

차(茶) 나무가 다른 나무들과 다른 잎을 가지게 된 것은 차나무가 다른 나무들과 비교할 때 생장(生長)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양의 질소(窒素)를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찻잎의 특성을 현대 과학적으로 분석한 실험에 의하면 찻잎이 다른 식물의 잎과 가장 다른 건 카테킨(Cathechin) 성분이었다. 사람 몸을 약화시키고 늙게 하는 유해 산소(有害酸素)인 활성산소(活性酸素)를 해(害)가 없는 물질로 바꿔 주는 게 폴리페놀(Polyphenol)이라는 화합물인데 이 항산화 물질의 제 일인자가 카테킨이었다. 사과나 양파에 있는 퀘르세틴(quercetin), 포도나 라즈베리 등에 있는 레스베라트록(resceratrol) , 블루베리나 크랜베리들에 있는 안토시아닌(anthocyanin)등도 폴리페놀이지만 카테킨에 비해서는 활성산소를 제어하는 효과가 약하다는 것이었다. 질소(窒素)는 글자 그대로 산소(酸素)의 작용을 없애 질식(窒息)시키는 원소다. 활성산소도 산소(酸素)이기에 질소(窒素) 함유량이 다른 나무에 비해 월등히 높은 차(茶) 나무의 찻잎에 확실하게 질식(窒息)되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차(茶) 나무는 자신의 영양소를 다른 식물들과는 달리 잎에다 보관하는 특징까지 있었다. 결국 활성산소라는 산소(酸素) 때문에 초래되는 세포의 노화를 막아 주어 인체의 건강과 면역력을 높여주는 결정력은 질소 함유량의 차이였다. 함유량의 차이라는 것은 결국 질소(窒素)가 토양 중에 많이 뿌려진 지역에서 차(茶) 나무가 생장(生長)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차(茶) 나무는 질소 비료가 듬뿍 뿌려진 곳에서만 생장(生長)했다. 질소(窒素)가 필수 구성물질인 단백질(蛋白質)로 만들어야 하는 알(卵)로 번식을 해야 하는 까마귀들은 그래서 차(茶) 나무가 너무나 필요했고 언제나 차나무가 어디 있는지 찾아냈다.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내면 그곳엔 차(茶) 나무가 있었다. 그런 질소는 인간의 몸 안에서도 항체를 형성해 면역을 담당하는 등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합성하는데 똑같이 핵심적인 원소였다. 삼족오(三足烏)가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내세워진 연유였다.

각저총(角觝冢)에 그려진 삼족오 . 주위에 바나나처럼 보이는 차(茶)나무의 잎들이 그려져 있다.


공기 중의 78퍼센트나 차지하고 있어 그야말로 지천에 널린 질소(窒素)는 그러나 두 개의 질소 원자가 결합해 N2라는 이원자 분자로 무색,무취,무미하게 공기 중에 떠다녀 차(茶) 나무가 생장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이원자 분자가 깨져 질소 원자 하나가 질소(窒素) 아닌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 않는 한, 공기 중의 질소는 차(茶) 나무가 원하는 질소(窒素)로 쓰이지 못했다. 1909년, 드디어 프리츠 하버(Fritz Jakob Haber)라는 화학자가 고온, 고압의 환경 속에서 촉매를 사용해 공기 중의 질소(窒素)를 수소와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하버법을 고안해 차나무가 원하던 질소 비료를 대량으로 만들어 냈다. 1909년 독일에서 나온 하버법은 1281년 고려에서 편찬된 삼국유사 권제 1 기이 제1 고조선(왕검조선)에서 일연이 기록한 기원전 3898년경에 일어난 사건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1909년의 하버(Haber)처럼 고온 고압의 환경을 공장(工場) 안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그리고 촉매를 이용해 인공적으로 수소와 질소를 공장(工場) 안에서 결합시키지는 못했지만 기원전 3898년에 환웅(桓雄)은 이것들을 풍백(風伯)과 운사(雲師), 우사(雨師)와 함께 자연 상태에서 펼쳐 보였다. 하버(Haber)가 공장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고온 고압 환경을 환웅(桓雄)은 풍백(風伯)과 운사(雲師), 우사(雨師)를 시켜 폭풍우(暴風雨)를 만들어 내고 자신이 벼락(申)을 침으로써 자연 상태에서 만들어냈다. 하버가 촉매(觸媒)를 이용해 질소를 수소(水素:H)와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만들어 낸 것처럼 환웅은 촉매(觸媒)가 아닌 자신의 벼락으로 전기 충격을 가해 이원자 분자로 똘똘 뭉처있던 질소를 두 개로 쪼개고 그 두 개의 질소를 각각 우사가 만든 빗속에 있는 수소(水素:H)와 결합시켰다. 질소(窒素:N)와 수소의 화합물인 암모니아(NH3)는 풍백(風伯)이 만든 바람을 타고 하버가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지역에 고루 뿌려졌다. 부작용 많은 화학비료가 아닌 부작용 전혀 없는 자연 비료가 신의 은총처럼 온 대지를 적셨다. 차나무도 오곡백과도 모두 축복해 준다는 듯이. 족집게처럼 찾아낸 차나무들을 중심으로 마을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 마을들의 중심은 차나무가 있는 곳이었고 그곳은 그 마을의 신단수(神壇樹)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으로 모여들었다.

번개(申)를 만들어 보여줄(示) 수 있어야만 신이라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글자가 신(神)이다. 출처: 네이버 한자사전


일연 대선사(大禪師)가 삼국유사 기이(紀異) 편을 집필한 건 고려 충렬왕(忠烈王)이 몽골풍으로 변발(辮髮)하고 몽골옷을 입은 채 모든 고려인들에게 몽골풍을 따르라고 강요하던 때였다. 몽골의 일본 원정을 위해 모든 고려인들이 몽골인의 채찍에 수모를 당할 때였다. 전함을 만들고 군량을 마련하느라 온 민족이 신음해야 했던 엄혹한 수난의 시대였다. 그런 때에 일연은 단군신화를 기록했다. 일연은 삼국유사의 기이(紀異) 편의 서왈(叙曰)에서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한 데서 나왔다는 것이 어찌 괴이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 기이가 제편의 첫머리에 실린 것은 그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三國之始祖, 皆發乎神異, 何足怪哉. 此紀異之所以漸諸篇也)라고 하였다. 단군신화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민족이 누란(累卵)의 지경에 처할 때마다, 민족의 명색이 의심될 때마다  되새겨 돌아보아야 할 전범(典範)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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