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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제의 정난(靖難)의 진실- 장영실(3) 日本國使詣闕 賜酒食. 日旣夕 令軍器監張火戲以視之. 倭驚曰 此非人力所爲 乃天神使之然也. 일본국(日本國) 사신이 예궐(詣闕) 하니 주식(酒食)을 하사하고, 날이 이미 저물게 되자, 군기감(軍器監)으로 하여금 불꽃놀이[火戲]를 베풀게 하여 구경시켰다. 왜사(倭使)가 놀라서 말하였다. 이것은 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천신(天神)이 시켜서 그런 것이다. - 정종실록 1권, 정종 1년 6월 1일 경자 기사 / 1399년 명 건문(建文) 1년以日本國大相國破賊之言 議罷騎船事. 일본국 대상국(大相國)이 왜적을 격파하였다는 말을 듣고, 배 타는 일을 정파(停罷: 일을 하다가 중도(中途)에서 아주 그만두다)할 것을 의논하였다.- 정종실록 2권, 정종 1년 7월 1일 기사 기사 / 1399년 명 건문(建文) 1년日本國 對.. 2026. 7. 3.
장영실의 진짜 정체 (1) 義禁府啓 大護軍蔣英實監造安輿 不謹愼牢固 以至折毁 律當杖一百. 繕工直長任孝敦 錄事崔孝男監造安輿 粧鐵亦不堅緻. 大護軍趙順生見安輿不堅牢處 謂英實曰 必不折毁. 皆律當杖八十. 上命減英實二等 減孝敦 孝男一等 順生不之罪. 의금부에서 아뢰기를 대호군(大護軍) 장영실(蔣英實)이 안여(安輿)를 감독하여 제조함에 삼가 견고하게 만들지 아니하여 부러지고 부서지게 하였으니 형률에 의거하면 장 1백 대를 쳐야 될 것이며 선공 직장(繕工直長) 임효돈(任孝敦)과 녹사(錄事) 최효남(崔孝男)도 안여(安輿)를 감독하여 제조하면서 장식한 쇠가 또한 견고하게 하지 아니했으며 대호군(大護軍) 조순생(趙順生)은 안여가 견고하지 않은 곳을 보고 장영실에게 이르기를 반드시 부러지거나 부서지지 않을 것이오라고 하였으니 모두 형률에 의거하면 장 80.. 2026. 7. 2.
1차왕자의난 무인정사(戊寅定社)의 진실- 장영실 (2) 日本大相國大內殿 一岐島 志佐殿 對馬宗島宗府郞等使人告還 各賜物厚於所獻. 일본 대상국(大相國), 대내전(大內殿), 일기도(一岐島) 지좌전(志佐殿), 대마(對馬) 종도종부랑(宗島宗府郞) 등의 사인(使人)이 돌아간다고 고하니, 각각 물건을 내려 주기를 바친 것보다 후하게 하였다. - 태종실록5권, 태종 3년 2월 13일 경신 기사 / 1403년 명 영락(永樂) 1년장영실이 조선에서의 경력(經歷)을 지금의 부산 동래에서 시작한 것은 일본과의 교역 때문이었다. 1403년 당시 일본과의 교역이 첨예한 중대성을 가지게 된 것은 연왕(燕王) 주체가 3년간의 반란에 성공한 후 황제 즉위와 함께 하서양(下西洋)이라 이름붙여진 정화함대의 서방 원정항해(遠征航海)를 명령한 때문이었다. 1399년 북평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3년의.. 2026. 7. 2.
아카드 사르곤과 단군조선 古記云 王儉父檀雄母熊氏王女辛卯五月二日寅時生于檀樹下有神人之德遠近畏服. 고기에서 말한다. "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고 어머니는 웅씨왕의 따님이며 신묘(BCE 2370)년 5월 2일 인시에 박달나무(檀木) 밑에서 태어났다. 신인의 덕이 있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경외심으로 복종했다…戊辰唐堯時來自檀國至阿斯達檀木之墟國人推爲天帝子混一九桓神化遠曁是謂檀君王儉在裨王位二十四年在帝位九十三年壽一百三十歲. 무진년(BCE2333) 제요도당(帝堯陶唐) 때에 단국(檀國-배달국)으로부터 아사달의 단목의 터에 이르니 온 나라 사람들이 받들어 천제(天帝)의 아들로 모시게 되었다. 이에 구환(九桓)이 하나로 통합하게 되었고 신(神)과 같은 교화가 멀리까지 미치게 되었다. 이를 단군왕검이라 하니 비왕의 자리에 있기를 24년, 제위(帝位.. 2026. 4. 23.
치우천왕과 황제헌원, 패수의 진실 軒轅之時 神農氏世衰. 諸侯相侵伐 暴虐百姓 而神農氏弗能征. 於是軒轅乃習用干戈 以征不享 諸侯咸來賓從. 而蚩尤最為暴 莫能伐. 炎帝欲侵陵諸侯 諸侯咸歸軒轅. 軒轅乃修德振兵 治五氣 藝五種 撫萬民 度四方 教熊羆貔貅貙虎 以與炎帝戰於阪泉之野 三戰然後得其志. 헌원(軒轅) 시대에는 신농씨(神農氏)의 후대가 쇠퇴해져 제후들이 서로 침략 정벌하고 귀족들에게 포악하게 굴었으나 신농씨가 정벌할 수 없었다. 이에 헌원은 군사를 훈련시켜서 조공하지 않는 제후들을 정벌하니 모두 신하로 복종했다. 그러나 치우(蚩尤)는 가장 포학하여 토벌할 수가 없었다. 염제(炎帝) 신농씨가 제후들을 치려고 하자 제후들이 모두 헌원에게 귀의했다. 헌원은 덕을 닦고 군대를 정비하였으며, 오행(五行)의 기운을 다스리고 다섯 가지 곡식을 심는 등 만민을 어루만.. 2026. 4. 1.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의 진실 삼조선은 신·불 ·만 삼한의 분립을 말한 것이니 신한은 대왕(大王) 이요, 불·말 두 한은 부왕(副王)이다. 삼한이 삼경(三京)에 나뉘어 있어 조선을 통치하였음은 이미 제1 편에서 말하였거니와 삼조선은 곧 삼한이 분립한 뒤에 서로 구별하기 위하여 신한이 통치하는 곳은 신조선이라 하고 말한이 통치하는 곳은 말조선이라 하고 불한이 통치하는 곳은 불조선이라 하였다. 신·말·불 삼한은 이두문으로 진한(辰韓), 변한(弁韓)이라 기록된 것이고, 신·말 ·불 삼조선은 이두문으로 진(眞), 막(莫), 번(番) 삼조선이라 기록된 것이다. 똑같은 신·말·불의 음역(音譯)이 어찌하여 하나는 진·마·변이라 하고 또 하나는 진·막·번이라 하여 같지 아니한가? 이는 남북의 이두문의 용자(用字)가 달랐기 때문이거나 혹은 지나인의 .. 2026. 3. 17.
약식과 오곡밥 유래의 진실 射琴匣第二十一毗處王 一作炤智王 即位十年戊辰幸於天泉亭. 時有烏與鼠來鳴 鼠作人語云 此烏去䖏尋之 或云神徳王欲行香興輪寺路見衆鼠含尾恠之 而还占之 明日先鳴烏尋之 云云 此說非也. 제21대 비처왕(소지왕炤智王이라고도 한다)이 즉위한 10년 무진(戊辰 AD488)에 천천정(天泉亭)에 거동했다. 이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 보시오“ 했다. 혹은 말하기를, 신덕왕(神德王)이 흥륜사(興輪寺)에 가서 행향(行香)하려 하는데 길에서 보니 여러 마리 쥐가 꼬리를 물고 있었다. 괴상히 여겨 돌아와 점을 쳐 보니 내일 제일 먼저 우는 까마귀를 따라가 찾아 보라’고 했다 한다. 하지만 이 설(說)은 잘못이다.王命騎士追之南至避村 今壤避寺村 在南山東麓. 兩猪相闘留連見之忽失烏所在. 왕은 .. 2026. 3. 2.
설날과 부여(扶餘), 구리(句麗)의 유래 白巢氏之族 支巢氏 與者人 往飮乳泉 人多泉少 讓於諸人 自不得飮而如是者五次. 백소씨족(白巢氏族)의 지소(支巢)씨가, 여러 사람과 함께 젖을 마시려고 유천(乳泉)에 갔는데, 사람은 많고 샘은 작으므로, 여러 사람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마시지 못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다섯 차례나 되었다.乃歸而登巢 遂發飢惑而眩倒 耳嗚迷聲 呑嘗五味 卽巢欄之蔓籬萄實. 起而偸躍 此被其毒力故也. 乃降巢闊步而歌曰浩蕩兮天地 我氣兮凌駕. 是何道兮 萄實之力. 衆皆疑之 支巢氏曰眞佳 諸人奇而食之果若其言. 於是諸族之食萄實者多. 곧 돌아와 소(巢)에 오르니, 배가 고파 어지러워 쓰러졌다. 귀에는 희미한 소리가 울렸다. 오미(五味)를 맛보니, 바로 소(巢)의 난간의 넝쿨에 달린 포도열매였다. 일어나 펄쩍 뛰었다. 그 독력(毒力)의 피해 때문이었다. -.. 2025.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