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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럼깨기의 유래와 임계(壬癸)역병(疫病)과 계갑(癸甲) 대기근(大飢饉)의 진실 只有左兵使高彦伯 留在慶州 而率飢羸數百之卒 無望於捍禦其方張之賊…人民飢餓 癘疫大熾 丁壯死亡殆盡 餘存者 多僅厲聲氣 雖欲呼集軍兵 以爲救援之計 其路無由. 다만 좌병사(左兵使) 고언백(高彦伯)만이 경주에 주둔하고 있는데, 굶주리고 파리한 군사 수백 명을 거느리고 있을 뿐이니, 한창 기세를 떨치는 적을 방어할 가망이 없습니다… 인민(人民)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전염병(傳染病)이 크게 기승을 부려 장정(壯丁)들이 거의 다 죽었고 살아남은 자들도 대부분 목숨이 겨우 붙어 있을 뿐이니, 비록 군병(軍兵)을 불러 모아 구원(救援)할 계획을 세우고자 하여도 방도가 없습니다. - 유성룡. 선조실록 41권, 선조 26년(1593) 8월 13일 갑오 수군들은 먼바다에 진을 친지 벌써 5개월이 되어 군정이 풀어지고… 전염병이 크게 번.. 2024. 2. 27.
거북선의 진짜 모습 신이 일찍이 섬오랑캐(島夷)들의 침입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별도로 거북선(龜船)을 만들었습니다. 이물에는 용머리를 붙이고, 그 아가리로 대포를 쏘며, 등에는 쇠못[鐵金尖]을 꽂았습니다.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으므로, 비록 왜적선 수백 척 속에라도 쳐들어가 대포를 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2차 출정)에야 돌격장(突擊將)이 그것을 타고 나왔습니다. 거북선을 운용하는 요령은, 먼저 거북선으로 하여금 왜적선이 있는 곳으로 돌진케 합니다. 그다음에 먼저 천자·지자·현자·황자 등 여러 종류의 총통을 쏘게 합니다. - 이충무공전서 권 2 장계 1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 중에서(사천해전:1592.5.29. 당포해전:1592.6.2) 朔壬午/員外劉黃裳將還京 上遣使問候. 劉.. 2024. 2. 23.
논개가 죽은 진주성 전투의 진실 時賊勢日熾 天朝深憂之. 兵部尙書石星 密遣沈惟敬 假稱京營添住遊擊 托以探賊. 實欲挺入賊營 與賊相見 賊講和. 惟敬簡其騶從 疾馳渡江 言語張皇. 이때에 왜적의 기세가 날로 성해지자 명나라가 깊이 걱정하였다. 병부 상서(兵部尙書) 석성(石星)이 비밀히 심유경(沈惟敬)을 파견하였는데, 경영 첨주 유격(京營添住遊擊)이라고 가칭하고서 적정(賊情)을 탐지한다고 핑계하였다. 그러나 실지는 왜적의 군영으로 들어가 왜적과 상견하여 왜적을 꾀어 강화(講和)하려고 한 것이다. 유경이 그 추종(騶從)을 간편하게 하고서 빨리 달려 강을 건너왔는데 언어가 장황하였다. - 선조실록 27권, 선조 25년(1592) 6월 29일 정사 備邊司啓曰 沈遊擊被拿而去云. 於我國 不無勤勞之人 且曾以天使來到. 過此國門之時 漠然不爲接待 則情理未安 何以處之.. 2024. 2. 20.
임진왜란은 화약전쟁이었다 (일본편) - 거북선의 진실 7 賊至尙州 遣通事景應舜 持書契請和 且以一赤幟爲信. 上遣李德馨 問其入寇之由 德馨至龍仁 賊已踰嶺 故不至而還. 적이 상주에 이르자 통사(通事) 경응순(景應舜)을 보내어 서계(書契)를 가지고와 화친을 청하고 하나의 붉은 깃발로 표신을 삼았다. 상이 이덕형을 보내어 침범한 까닭을 묻고자 하였는데 덕형이 용인(龍仁)에 이르렀을 때 적이 벌써 재를 넘은 까닭에 가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 선조실록 26권, 선조 25년(1592) 4월 17일 병오 일조편법으로 스페인의 은괴 가치를 한껏 올려주었던 장거정이 갑자기 병으로 쓰러져 실각한 건 이베리아 연합이 탄생한 다음 해인 1581년이었다. 1572년 융경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어린 만력제가 즉위한 이후 실질적인 명나라의 황제는 섭정대신이었던 장거정이었다. 장거정이 병석.. 2024. 2. 11.
임진왜란은 화약전쟁이었다 (스페인편) - 거북선의 진실 6 恒福曰 爲今之計 莫如差出統制使及水使 使之畫策防守耳. 上曰 此言是矣. 又曰 賊數極多 當初漂風之說 亦是虛言. 必不抵當而自退 閑山形勢極好 把截亦便 棄之不守 計甚誤矣. 元均嘗以爲難進絶影前洋 今果至此. 予已前言 彼賊六年相持 豈爲一張封典乎? 大槪賊船 比前極大云 然耶? 應南曰 然. 上曰 大砲 火箭 亦載來乎? 命元曰 此則不知 金軾言 倭賊薄上我船 將士不能措手而敗沒 云. 光績曰 我軍只放七柄砲火云 良可痛心. 上曰 平秀吉每言 先破舟師 然後可取陸軍云. 今果然矣. (병조판서) 이항복이 아뢰기를, 지금의 계책으로는 통제사와 수사(水使)를 차출하여 계책을 세워 방수하게 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이 옳다 하고, 또 이르기를, 적의 수가 매우 많았으니 당초에 풍파에 쓸려 죽었다는 설은 헛소리였다. 그들을 감당.. 2024. 2. 10.
17세기 유럽 가발과 에티켓의 진실 17세기 초 프랑스 궁전(宮殿)에서 시작된 가발(假髮)의 유행은 17세기 후반 무렵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처럼 유행의 시작이 상류층이었던 까닭은 당시 젊은 왕이었던 루이 13세가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발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성들에게는 긴머리 가발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는데, 17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러프의 유행이 점차 사그라지면서 자연스레 남성들의 머리 스타일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루이 14세 시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길고 풍성한 가발이 착용되었다. 이러한 헤어스타일은 루이 14세가 선호하던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의 군복과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고안된 형태이다. 당시의 가발은 곱슬 거리는 머리카락이 어깨와 앞가슴 길이까지 늘어 떨어지는 모양으로 가발 자체의 크기와 무.. 2024. 1. 31.
푸거가(House of Fugger) - 거북선의 진실 4 備邊司啓曰 日本 倭人 平長親所持來銃筒 至爲精巧 所劑火藥 亦猛烈. 不可不賞. 請從其願 以授堂上何如 答曰 如啓. 비변사가 아뢰기를 일본(日本) 왜인(倭人) 평장친(平長親)이 가지고 온 총통(銃筒)이 지극히 정교하고 제조한 화약도 또한 맹렬합니다. 상을 내리지 않을 수 없으니, 바라건대 그의 원대로 당상의 직을 제수함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 명종실록 18권, 명종 10년(1555) 5월 21일 갑인 一. 雖學百枝 勇士如雲 非火藥 決不可當此. 焰硝一事 曾爲留意 幸而傳習倭法 而唐焰硝海水煮成之法 則至今無人傳習. 今宜各別下令 果能傳習其海水煮成法者 則有職人陞堂上 其下除授高職事. 온갖 기술을 배운 용사(勇士)들이 구름처럼 모였다고 하더라도 화약(火藥)이 없으면 결코 대응할 수가 없다. 염초.. 2024. 1. 15.
흑사병(黑死病)의 원인 - 거북선의 진실 3 檢校參贊門下府事崔茂宣卒. 茂宣, 永州人, 廣興倉使東洵之子。 性巧慧多方略, 喜談兵法。 仕前朝, 官至知門下府事。 嘗曰: "制倭寇莫若火藥, 國人未有知者。" 茂宣每見商客自江南來者, 便問火藥之法。 有一商以粗知對, 請置其家, 給養衣食, 累旬諮問, 頗得要領。 言於都堂欲試之, 皆不信, 至有欺詆。 茂宣積以歲月, 獻計不已, 卒以誠意感之, 乃許立局, 以茂宣爲提調官, 乃得修鍊火藥。 其具有大將軍、二將軍、三將軍、六花石砲、火砲、信砲、火㷁、火箭、鐵翎箭、皮翎箭、蒺藜砲、鐵彈子、穿山五龍箭、流火、走火、觸天火等名。 旣成, 觀者莫不驚嘆。 又訪求戰艦之制, 言於都堂, 監督備造。 及庚申秋, 倭寇三百餘艘至全羅道 鎭浦, 朝議崔公火藥, 今可試矣。 乃命爲副元帥, 與都元帥沈德符、上元帥羅世, 乘船齎火具, 直至鎭浦。 寇不意有火藥, 聚船相維, 欲盡力拒戰, 茂宣發.. 2024.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