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창세기 2장 에덴동산 중에서
신라 왕관에 산(山)이란 장식이 있는 이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반드시 생명의 나무(Tree of Life)가 있었다. 더 정확히는 생명의 나무가 거기에 있기에 사람들이 그 주위로 모여들어 살았다. 그렇게 된 데에는 꼭 마셔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물들이 오염되어 있어서였다. 사람들은 마셔야만 하는 물을 먹고는 병에 걸리고 더러는 죽어갔다. 마셔도 병 걸리지 않고 죽지 않는 그런 물이 흐르는 곳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애타게 찾아낸 땅에선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 땅의 물은 마셔도 탈이 없는지 그 원인을 찾아내야했다.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찾아낸 땅이었지만 머지 않아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비좁아 살 수 없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은 언제나 나무들이 있는 숲에서부터 흘렀기에 원인을 찾는 사람들은 결국 숲으로 가게 되었다. 거의 모든 숲은 산으로 이어졌고 결국 사람들은 산(山)에 해답이 있다고 확신했다. 사람이 마셔도 탈이 나지 않는 물은 결국 산(山)이 정화해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로 넘쳐나 앉을 곳 하나 없게 되어버린 깨끗한 물이 흐르는 안전지역에서 벗어나 집한칸이라도 지을 수 있는 땅이 있는 다른 산(山)으로 몰려간 사람들은 이내 산이 물을 정화해 주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아냈다. 산이라고 다 같은 산이 아니었다. 이젠 산이라고 다같은 산이 아닌 그 원인을 찾아내야 했다. 그것도 한시 바삐. 살기 위해.
과학(科學)과 분석(分析), 조사(調査)라는 한자에는 왜 木 자가 꼭 들어가 있을까
깨끗한 물이 흘러 사람들이 그 물을 마셔도 아프지 않고 죽지 않는 땅에 있는 산에는 다른 산들에는 살지 않는 나무가 뿌리내리고 생장하고 있음을 사람들은 결국 찾아냈다. 그 나무의 모습을 그리고 특징을 파악해야만 했다. 지금 깨끗한 물이 흐르는 땅을 찾았다고 안도하고 있는 이 땅도 어차피 얼마 안가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서 있을 곳 하나 없게 될 것을 경험으로 아는 사람들이었다. 나무의 모습과 특징을 줄기와 가지와 잎들로 세분해 조사하던 사람들은 그 나무의 꽃과 열매까지 모두 기억해야 했다. 종이와 필기도구, 문자도 없던 시절, 넓적한 돌편과 단단한 나무판에 새긴 그들의 기록은 그림일 수 밖에 없었고 목숨이 걸린 일이기에 사람들은 한사코 더 자세한 내용을 담을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경주해야 했다. 그 나무들의 특징들을 그린 그림들을 사람들은 천부인(天符印)이라고 부르며 우러렀다. 내일이나 모레나 곧 닫쳐 올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그들을 살려 줄 그림들이었다. 그들에게 그 그림들은 하느님과 다름 아니었다.
빗살무늬토기 밑부분의 구멍들은 시루의 증거
나무판에 새겨진 그림을 가지고 찾아나선 사람들은 그 나무를 생명의 나무라고 불렀다. 생명의 나무는 다름아닌 차(茶)나무였다. 그래서 차나무 주변에는 어떤 벌레도 가까이 오지 못했고 심지어 제멋대로인 염소도 얼씬하지 못했다. 생명의 나무에서 딴 잎을 물에 넣어 끓임으로써 사람들은 생명을 지켜주는 물을 아프지 않고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생명의 나무들이 살고 있는 산의 물이 흘러 내리는 골짜기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무리지어 마을을 이루며 살게 되었다. 그러나 생명의 나무에서 잎을 따 먹을 수 있는 기간은 5월부터 9월까지로 일년중 반이 안되었다. 저장의 문제가 가장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현안(懸案)으로 떠올랐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던 어느 여름날 햇볕으로 뜨거워진 바위 위에 떨어진 찻잎을 조사하던 사람들은 그 찻잎이 유난히 오랫동안 상하지 않고 보존되는 것을 발견했다. 차잎에 열기를 주는 방법이 강구되었다. 차잎에 뜨거움을 주기 위해서는 불을 가해야 했는데 그럴 경우 차잎은 타서 재가 되었다. 조그만 돌판을 가져와 가열시켜 차잎을 구워 보았으나 원하는 만큼 차잎을 굽는데는 너무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었다. 달의 산에서부터 행해져 온 소금 제작 방법에서 착안한 실험(實驗)이 이루어졌다. 물을 끓여 그 뜨거운 증기(蒸氣)로 찻잎을 뜨겁게 가열해 굽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보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불을 직접 받아 물을 끓이는 그릇과 뜨거운 증기(蒸氣)만을 받아 차잎을 가열해 주는 그릇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제주 고산리에서 출토된 압인문토기와 한동리에서 출토된 압날문 토기는 찜통과 시루로 각각 쓰인 그릇들이었다. 물론 압날문 토기 밑부분엔 빗살무늬토기처럼 구멍이 있었다.
빗살무늬토기는 찜통으로 쓰이는 토기에 밑부분이 박혀야 했기에 밑바닥이 뾰족해야만 했다.
제주시 한동리(漢東里)에서 출토된 압날문토기는 밑바닥이 볼록해 홀로 설 수 없다는 점에서 그보다 나중에 만들어진 역시나 밑바닥이 뾰족해 홀로 설 수 없는 빗살무늬토기와 흡사했다. 둘 다 차잎을 쪄서 갈돌로 갈판에 갈아낸 후 갈려진 차잎들을 뭉쳐 덩어리차로 만들어 차나무에 찻잎이 자라지 않는 겨울동안 차를 넣고 물을 끓여 마실 수 있게 하기 위한 시루(斯盧)였다. 갈돌과 갈판이 고대인들의 유적에 항상 출토되는 것은 그래서다. 찜통으로 사용되던 압인문 토기는 후일 민무늬토기에게 그 역할을 넘겨주었고 빗살무늬토기는 시루번이라는 증기누출방지장치를 가진 시루(甑)로 발전했다.
차(茶)는 살아 있는 목구멍을 넘어가는 실존의 국물인 동시에 살 속으로 스미는 상징이다 - 작가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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