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백 년을 주기(週期)로 바뀌는 기후변화의 역사에 특이하게도 천년이상 지속(持續)된 기후 온난화 시기가 있었다. 기원전 1600년경부터 기원전 500년경까지 지속된 그 기후 온난화의 결과로 결국 지독한 가뭄이 계속해서 발생했고 그 가뭄들은 우리 민족의 주활동영역이었던 비옥한 몽골 초원을 사막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금 고비(Gebi) 사막이라 불리는 몽골 초원의 변화는 우리 민족 상고사(上古史)를 지금처럼 불분명하게 만든 첫 번째 이유가 되었다. 기후변화 주기(週期)가 지켜지지 않고 기후 온난화가 천년이나 넘어 계속되면서 바다는 뜨거워져만 갔고 결국 그 뜨거운 바다의 영향으로 우리 민족이 강역(疆域)으로 삼아 수천 년을 살아온 땅의 강(江)들이 모두 말라갔다. 말라버린 강(江) 유역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건 당연했고 끝내 사람들이 떠나버리자 그 땅의 수천 년 역사도 함께 사라져 갔다. 수천 년을 살아온 땅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이동한 우리 민족이 그 이동사(移動史)를 지명(地名)들과 함께 세세하게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것이 오늘 후손들이 선조(先祖)의 역사적 흔적을 제대로 훏어가지 못하게 하는 두 번째 이유가 되었다. 게다가 조선의 왕이 된 고려의 신하 이방원이 이런 역사들이 집중적으로 담긴 신지비사(神誌祕詞)를 괴탄(怪誕)하고 불경(不經)스런 설(說)들을 담은 책이라며 불살라버린 만행은 선조들의 역사를 온전히 복원해 내려는 후손들의 고된 노력을 공격받게 만드는 빌미를 더해 주는 일이 되었다. 한 글자로 되어있는 중국의 나라 이름들과는 달리 조선과 고리, 숙신과 예맥, 읍루와 옥저 같이 두 글자로 이루어진 우리 고대 국가들은 그 이름들에서 알 수 있듯 고조선을 필두로 수메르인들과 아카드인들의 연합으로 만들어진 국가(United States), 즉 ’우리나라‘들이었다. ‘우리나라’란 용어(terminology)는 그러나 단지 연합국가만을 나타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말은 아니었다. 우리들의 국가(our country)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말은 더더욱 아니었다. 국가 이름이 중국처럼 한 글자였던 환국(桓國)을 건국해 이끌어 오던 아카드인들이 수메르인들을 합류시켜 국호가 두 글자인 배달국을 건국하고 끝내는 수메르인들을 자신들과 똑같은 책임과 권리를 갖는 동등한 지위로 격상시켜 창건한 첫 국가가 조선이었다. 천자인 배달국 환웅(아카드)이 곰에서 인간이 된 여인(수메르)과 결혼해 낳은 자식이 단군이 되어 건국한 나라가 고조선이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아카드인(환웅)과 수메르인(곰)이 배달(背達) 이후 어떻게 다시 연합해 ‘우리나라(UriNara)’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증언이었다.
환인, 환웅, 천왕, 태왕 같은 호칭으로 불렸던 환국(桓國) 이래 다른 우리 민족 국가들의 군주(君主)와는 달리 고조선의 군주는 단군왕검(檀君王儉)으로 불렸다. 이렇게 고조선의 군주인 단군(檀君)에 덧붙여진 왕검(王儉)이라는 호칭은 고조선 이외의 다른 어떤 우리 민족의 국가들에서는 볼 수 없는 말이었다. 그렇게 특별한 호칭인 왕검(王儉)은 그러나 그동안 우리가 추측하던 지명(地名)이 아니었다. 하늘의 질서를 어떠한 경우에도 지킨다는 본성을 잃고 탐욕을 부림으로써 루왜은조리에서 배달하게 된 책임을 물어 궁희의 자식들인 아카드인들이 끝까지 문책하며 훈육했던 소희의 자녀들(수메르인)을 그렇게 하대 받는 한 단계 낮은 신분의 사람들에서 자신들과 같은 신분으로 격상시켜 건국한 게 조선이었다. 그래서 그런 조선의 군주에게는 아카드인들만의 국가였던 환국과 배달국(倍達國)의 군주와는 달리 모든(僉 [qi:치]) 사람(人)들(儉)의 왕이라는 뜻의 별호(別號)인 왕검(王儉)이 군주(君主) 칭호인 단군 뒤에 덧붙여진 것이었다. 고조선의 군주에게 굳이 모든 사람들(僉人)의 왕이라는 뜻의 왕검(王儉)이라는 별호가 붙여진 이유는 그들이 네안데르탈인들과 유전자가 섞인 혼혈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네안데르탈인들과 함께 살던 시대에 자신들은 마고와 궁희, 소희라는 삼신할매들의 후손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아카드인들과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을 네안데르탈인과 혼혈되지 않은, 태고적부터 내려온 마고의 혈통인 호모 사피엔스라 하여 산스크리트어로 나라(nara=the primeval man)라고 불렀다. 네안데르탈인과 섞이지 않은 호모 사피엔스들끼리만의 연합이라 하여 특별히 만들어진 말이 ‘우리나라(UriNara)’란 말이었다. 그러나 이런 아카드와 수메르의 연합 국가 창설은 배달(背達) 사건으로 촉발되어 계속 이어져 온 아카드와 수메르의 오랜 갈등을 마치 없었던 일처럼 덮어버림으로써 그 갈등의 원인이었던 배달 사건에 대한 역사까지도 묻혀버리는 현상을 초래했다. 이 같은 배달 역사의 매장은 결국 명징한 민족사의 궤를 짚어내려는 후손들의 역사 복원 작업을 더욱 힘들게 하는 크나큰 장애가 되었다. 루왜은조리를 떠나야 했던 배달(背達)을 천추의 한으로 여기는 아카드인과 그 배달(背達)의 원인인 오미의 변을 일으킨 수메르인들 간의 연합은 그래서 언제나 내부적으로는 치열한 문책과 변명이 갈등하는 분열이 내재된 단합이었고 그것이 우리 상고사를 흐릿하게 만드는 세 번째 요인이 되었다. 고조선이 건국된 후 복본(復本)이라는 글자에 덮을 아(覀) 자가 첨가되어 복본(覆本)으로 변경된 건 그래서였다.
우리 민족이 아카드인(Akkadian)들이 세운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이라는 고조선보다도 앞서서 존재했던 국가들을 우리 민족의 첫 국가로 삼지 않고 기원전 2333년에 단군 왕검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해 건국한 고조선을 우리 민족의 첫 국가로 내세운 이유는 고조선이 수메르인들을 아카드인들과 같은 나라(nara=the primeval man)로 대접한 배달(背達) 사건 이후의 첫 국가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Uri Nara)라는 말은 고조선의 건국으로 인해 생긴 용어(terminology)인데 그 단어를 분석해 보면 수메르어와 아카드어가 차례로 사용되어 만들어진 용어였다. 우리(Uri)란 단어는 수메르어로 연합한(united), 함께한 이라는 뜻이었고 나라(Nara)란 산스크리트어로 태곳적 원시시대부터 있어온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였다. 그런 수메르어 우리(Uri)와 아카드어 나라(Nara)가 합쳐져 만들어진 용어(terminology)가 ‘우리나라’였다. Nara가 의미하는 태곳적 원시시대부터 내려온 사람들(nara=the primeval man)이라는 함의는 네안데르탈인들과 혼혈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뜻했고 그것은 달의 산, 루왜은조리에서 배달(背達)한 아카드(Akkad)인들과 수메르(Sumer)인들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삼신할매의 자식들로만 이루어진 루왜은조리 다섯 부족 중 왜(倭 [wei]) 부족이 배고픔을 면하려는 탐욕으로 규율을 깨고 포도주를 마셔 모든 나라(那羅 na와 ra)들이 배달(背達)할 수밖에 없었던 잘못을 깊이 새기고 다시는 탐욕으로 인해 질서를 깨뜨리지 않는 본성을 되찾아 달의 산으로 돌아가겠다(還)는 복본(復本)을 뜻(義)으로 세운 아카드인들이 건국한 첫 국가는 그래서 환인(還因)이 다스리는 환국(還國)이었다. 배척했던 왜인들이 소속된 수메르인들을 다시 백성으로 받아들인 환웅(還雄)이 자신이 세운 국가 이름을 한 글자가 아닌 두 글자의 배달국(背達國)이라 한 건 배달 사건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뿐만 아니라 수메르인들이 다시 국가에 포함됐음을 알리기 위함이기도 했다. 이렇듯 국호가 중국처럼 한 글자였다가 두 글자로 늘어난 것은 아카드인들의 배달국이 수메르인들을 아카드인보다 한 단계 낮은 신분이기는 했어도 그들을 국가 형성의 한 주체로 참여시켜 건국되었음을 의미했다. 복본 하겠다는, 달의 산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환(還) 자가 발음(huan)만 같은 환(桓) 자로, 또한 배달(背達)이 배달(倍達)로 각각 바뀌어 그 연원(淵源)들이 알 수 없게 되고 또한 수메르인들이 아카드인들과 똑같은 지위로 격상되어 연합국가로 건국된 고조선이 환국과 배달국을 제치고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로 내세워지게 된 것은 모두 배달국 환웅 치우(蚩尤)가 기원전 2600년대 내내 벌어졌던 분리파 황제(黃帝) 헌원(軒轅)과의 전쟁에서 패배(敗北)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탁록(涿鹿)전투에서의 치우군 패배는 황제헌원을 시조로 내세우는 사람들을 지나(支那: china)라고 부르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황제 헌원(黃帝軒轅)과 함께 배달국에 반란을 일으키고 그 반란을 성공으로 이끌어 낸 사람들은 나라(nara, 那羅) 중 나(na, 那)에 해당되는 왜족의 수메르인들이었다.
기후 한냉화로 차(茶)나무들이 많이 죽어 우물에서 샘솟는 찻물이 부족해졌을 때 소희의 자식들인 수메르인들이 포도주를 찻물 대신 마셔 오미의 변이 일어나자 나라(nara=the primeval man= 태고적부터 내려온 사람)들은 차(茶)나무를 찾아 루왜은조리를 떠나 사방으로 유랑의 길을 떠나야 했다. 동쪽 끝 삼위태백에서 차(茶)나무를 찾아내고 그 찻잎들을 복본(復本)의 전진기지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로 보낼 때 찻잎들의 약효를 보존하기 위해 습기제거제로 사용한 옥(玉)을 둥근 고리 모양으로 만들어 환(環)이라고 부른 이유는 루왜은조리로 반드시 돌아가겠다는 궁희의 소생들인 아카드인들의 의지 때문이었다.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었기에 그 뜻은 처음과 끝이 동일한 동그란 원(圓)으로 표시되었고 동그란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것이기에 원이라 쓰지 않고 환(圜)이라 썼다. 그래서 아카드인들이 있는 곳엔 언제나 복본(復本)의 의지를 만천하에 고하는 원형(圓形)의 제단인 환구단(圜丘壇)이 나라(nara= the primeval man= 태고적부터 내려온 사람)들을 낳은 마고와 궁희, 소희를 각각 기리는 원형(圓形)의 삼층단(三層壇)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마고와 궁희, 소희를 뜻하는 삼층 제단의 의의는 후일 북송의 학자 주돈이(周敦頤)에 의해 태극도설(太極圖說)로 정리되어 태극(太極)과 음양(陰陽)을 각각 상징하게 되었다. 기원전 4700년부터 기원전 2900년까지 지금의 요녕성 능원 지역에 존재했다고 서양 학자들에게도 공인된, 여신묘로 유명한 홍산문화에 삼층 원형 제단 유허(遺墟)가 발견된 것은 그래서 당연했다. 그곳은 그 당시 일본 지역에서 생산된 찻잎들이 집산되어 차(茶)로 만들어져 북방 초원로를 통해 세계로 수출되던 찻잎생산기지였다. 이렇듯 근본인 달의 산으로 돌아간다는 복본(復本)을 의미하는 환(圜)이 똑같은 발음(huan)인 둥글 환(丸) 자로 환자(換字)되고 나중에는 그 연원(淵源)을 알 수 없는 구(九) 자로 바뀌게 된 것은 기원전 2600년대 내내 벌어졌던 탁록(涿鹿) 대전에서 황제헌원이 지휘하는 분리주의 반란군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군신(軍神)으로 불리던 치우군(蚩尤軍)에 승리한 다음부터였다. 기원전 2598년 패전한 치우는 처형당했다. 치우(蚩尤)의 패전은 그가 지휘한 환려군(丸黎軍=구려군 九黎軍)에 배속되어 있던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라고 스스로를 불렀던 수메르인들의 배반 때문이었다. 치우 천왕의 안개 작전으로 방향을 잃어버려 번번이 패전하던 황제군이 역전의 승기를 잡을 수 있게 된 건 반역한 구려군의 수메르인들이 나침반을 만들어 짙은 안갯속에서도 황제군의 방향을 인도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하는 짓이 떳떳하지 못하고 의심스러우며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뜻의 구리다, 구려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치우 천왕의 효수(梟首)된 모습은 소꼬리로 또는 꿩의 꽁지로 만들어진, 풀어헤쳐진 긴 머리카락들이 쏟아져 내린듯한 모습의 기(旗)로 만들어져 아카드인 들에 의해 두고두고 추념(追念)되었다. 지금 서울에 있는 뚝섬이 뚝섬으로 불려지게 된 둑(纛)이었다. 검을 려(黎) 자를 쓰는 구려군(九黎軍)의 원래 명칭은 아카드와 수메르의 연합을 뜻하는 돌아갈 환(圜) 자와 검을 려(黎) 자가 함께 쓰인 환려군(丸黎軍)이었다.
기후 온난화와 한랭화 같은 기후 변화가 4백 년 주기로 번갈아 계속되자 그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은 인류 생존의 관건이 되었다. 대책의 중심은 결국 매년 그 생산량이 한정되어 있는 찻잎의 분배문제에 두어지게 되었고 그래서 분배문제의 핵심인 공급망에 모든 초점이 쏠리게 되었다. 공급망은 교역로로 그 효율성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결국 어떤 경로를 지나는 교역로인가가 기후변화 대책의 관건이 되었다. 본성을 회복해 복본 하는 것을 국가 구성의 이유로 계속 고집하는 배달국 조정은 복본의 전진기지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 대한 지원을 언제나 최우선시해 매년 그 어떤 지역보다 많은 찻잎 할당량을 공급했다. 기후 변화가 온난화로 진행되는 시기에는 이런 정책이 다른 지역에서 큰 저항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배달국 조정이 직접 통치하는 삼위태백지역에서의 찻잎 생산량이 이 기간에는 늘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삼위태백지역에서의 찻잎 생산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기후 한랭화 시기에 발생했다. 한반도와 왜에서 생산되는 찻잎들로만 대륙의 동서에 몰려있는 모든 수요를 감당해야 했기에 만성 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의 중국 지역에서의 인구 증가는 당시에도 뚜렷해 엄청난 압력이 되고 있었다. 그들은 더 많은 아니 인구 규모에 따라 찻잎이 할당되는 분배정의의 실현을 계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번조선(후일 번한)이 관리하는 왜국에서 생산되는 찻잎은 회계(오늘날의 소흥)와 산동반도를 통해 오늘날의 중국 지역으로 들어와 탁록(涿鹿) 지역을 거쳐 지금의 요녕성 능원지역의 홍산으로 집산되고 있었는데 기원전 2698년에 헌원(軒轅)은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찻잎들을 홍산으로 보내지 않고 자체적으로 분배해 버리는 반란을 일으켰다. 기원전 2800년부터 시작된 기후 한랭화는 헌원이 반란을 일으키던 시점부터는 본격화되어 삼위태백(三危太伯)에서의 찻잎 생산은 크게 줄어들고 있었다. 황제헌원(黃帝軒轅)의 이 반란을 계기로 나라(NaRa:the primeval man)의 나(Na: 那)가 수메르인들을 라(La: 羅)가 아카드인들을 각각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지나(支那)라는 말은 갈라져 나온 나(那)란 뜻인데 헌원의 반란으로 갈라져(支) 나와 계속 버티는(支) 나(那) 사람들(支那)이란 뜻의 차이나(china= 支那)가 황제(黃帝) 헌원(軒轅)의 반란을 계기로 분명한 국가적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헌원을 황제로 받든 차이나(China= 支那)가 역사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홍익인간 제세이화로 본성을 회복해 복본(復本) 하는 것을 체제의 근본 목표로 삼아 연합국가로 뭉쳐있던 사람들이 이제 쪼개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갈라져 나간 사람들이 지(支)가 되면서 연합을 지키는 사람들은 지(氐:근원, 근본)가 되었다. 후일 근본과 지파(支派)를 분명히 구분하기 위해 지(支)와 발음이 비슷한 근본을 나타내는지(氐) 자는 동의어인 이(夷) 자로 바뀌어 쓰였다. 계속된 기후 온난화로 아카드인들이 주도하는 나라(nara)들이 주강역이었던 몽골 고원을 떠나 대흥안령 산맥 동쪽으로 이동하자 수메르인인 지나(支那)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을 동이(東夷)로 불렀다. 근본인 지(氐) 자를 지나인들이 어떻게 이(夷) 자로 바꾸었는지는 아래 네이버 한자사전이 잘 보여주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드들이 서이(西夷)였기에 그들은 억지로 동이(東夷)가 되어야 했다.
달의 산에서 마고와 궁희, 소희의 자녀들로 살아가던 시절에는 소희의 자녀들인 수메르인들이 궁희의 자녀들인 아카드인들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래서 수메르인들을 의미하는 루와 왜의 두 부족 이름이 아카드인들을 의미하는 은, 조, 리의 세 부족 이름보다 앞에 불려졌는데 그건 루족이 만들어 낸 도르래 때문이었다. 차(茶) 나무의 찻잎은 땅에 스며들어 찻물이 되어 땅 위로 샘솟았고 나라(那羅, nara)들은 그 물을 지유(地乳)라 부르며 양식으로 삼았다. 그런데 기후 변화로 그 양이 점점 부족해지자 결국 샘을 파내려 가야만 했고 그래서 샘은 계속 깊어져만 갔는데 그런 깊은 샘에서 찻물을 길어 올리려면 여간 힘든 노동이 요구되는 게 아니었다. 샘이 너무 깊어져 사람이 빠지면 바로 나오기 힘들 정도가 되자 이제 샘은 빠지지 않게 주변이 돌들로 벽이 둘러쳐진 깊은 우물이 되었다. 찻물을 다루는 일은 남성들이 관여할 수 없는 오롯이 여인들만이 전담하도록 되어있는 모계사회가 남겨준 마지막 경제적 실권이어서 그 깊어져만 가는 우물로부터 찻물을 길어 올려야 하는 노동은 여인들로서는 점점 감당하기 힘든 작업이 되어갔다. 더 이상 해 낼 수 없어 찻물 관리권을 남자들에게 넘겨야 될 판에 계속 그 경제적 실권을 여인들이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 건 도르래(轤:pulley)였다. 이런 훌륭한 도르래를 발명한 건 수메르인인 루(Lu) 부족이었다. 위예(yue)라고 발음하던 달(月)을 루(lu)라고 발음하게 된 연유였고 루왜 두 부족을 수메르라고 부르게 된 시작이었다. 수메르는 Su와 Me 그리고 R이란 세 단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스크리트어로 Su는 배달하다(delivery), Me는 인간 몸 안에 있는 신들과의 소통체계(a system of channels) 그리고 R은 작동하다(to move)는 뜻이었다. 이를 정리하면 수메르(Sumer)라는 말은 하늘의 신들이 인간들에게 유용한 자신들의 신비스러운 능력들을 인간을 위해 배달하면(Su:delivery) 전송된 신들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특별한 소통 체계들(Me:Channels)이 몸 안에서 작동되는(R:move) 사람들이란 뜻이었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의 신들로부터 그들의 초월적인 능력을 전송받는 소통체계인 메(Me)였다. 메(Me)는 도르래 같은 인간 생활에 꼭 필요한 도구나 기계를 발명하게 하는 지혜나 음악, 글쓰기 같은 창조적인 능력을 신이 사람들에게 내려줄 때 그 신비스러운 힘을 수령하는 체계(channel)였다. 우리 민족이 머리 정수리의 머리카락을 모두 자르고 정수리 주변의 머리카락을 모아 올려 상투로 틀어 오늘날의 안테나처럼 하늘을 향해 바짝 세웠던 연유가 여기에 있었다.
아카드(Akkad)는 Ak와 Ka(kha), 그리고 d(dh)라는 세 단어로 이루어진 단어인데 산스크리트(Sanscrit)어로 Ak은 지향한다(to go, toward), ka(kha)는 구멍, 홈(hole, cavity)을 뜻했고 d(dh)는 자리하다, 위치하다(placing,possessing) 라는 뜻이었다. 이를 조합하면 아카드란 말은 근원인 구멍(kha=hole)이 자리한 곳(dh=placing, possessing)을 향해 가는(ak=to go, toward) 사람들이란 뜻이었다. 아카드(Akkad)라는 이름에 담긴 이런 철학을 후일 이론으로 정립해 태극도설로 발표한 이는 북송대의 학자 주돈이(敦頤)였다. 그가 정리한 태극도설(太極圖說)은 만물을 생성한 근원이 구멍(kha=hole, cavity)이며 태극(太極)이라 명명된 이 구멍(虛, 無)이 움직여 양(陽)이 생겼고 양(陽)을 생겨나게 한 그 움직임이 계속되어 극(極)에 달하면 고요해지는데 이렇게 태극이 양의 움직임으로 극에 달해 고요해질 때 음(陰)이 생겨난다고 태극과 음양(陰陽)의 생성을 설명하고 있었다. 구멍(hole)으로 묘사되는 허(虛) 또는 무(無)를 의미하는 태극이 양과 음을 일으켜 만물을 일으킨다는 태극이론이 루와 왜 두 부족으로 이뤄진 수메르인들의 천지창조론이라면 허(虛), 무(無)를 의미하는 태극이 양과 음과 함께 덕(德)을 일으켜 만물을 생성케 한다는 삼태극론(三太極論)은 은, 조, 리 세부족으로 이루어진 아카드인들의 천지창조 이론이었다. 음과 양이 태극에서 나와 음양이 다시 화수목금토라는 오행을 만들어내고 이 오행에서 만물이 만들어진다는 음양오행설을 내용으로 하는 태극도설이 수메르의 이론이라면 도(道)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는 노자의 말로 집대성된 삼태극론(三太極論)은 아카드인들의 이론이었다. 박제상 선생의 징심록 부도지에서는 노자의 원리와 동일하게 형체 없는 율려(律呂)에서 마고여신이 나왔고 그녀에게서 궁희와 소희가 나왔으며 그들에게서 각각 둘씩 나온 자식들이 서로 짝을 이뤄 각 짝마다 셋씩의 자식을 낳아 나라(那羅, nara)를 이루었다고 했다. 이는 신라 경주 김 씨 마립간(麻立干) 왕조가 아카드 즉 나라(那羅) 중 라(羅)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란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우리 민족의 주된 강역(疆域)은 원래 한반도가 아니었다. 대흥안령 산맥 동쪽의 만주 평원도 아니었다. 연산산맥 남쪽의 좁디좁은 화북 평원 또한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주강역은 넓디넓은 몽골초원이었다. 왜에서 생산되는 찻잎들을 관리하기 위해 대륙의 동쪽 끝 만주 평원까지 아울렀던 우리나라(UriNara)의 강역(疆域)이었다. 복본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까지 찻잎을 보내주어야 했던 우리나라(UriNara)의 강역(疆域)은 그래서 몽골 고원 전부여야 했다. 지나인((支那人)들이 지어준 것이라 착각해 몽고(蒙古)라는 말을 지독히 싫어하는 몽골인(Mongolian)들은 그래서 몽고의 진짜 뜻은 알지 못한다. 몽고라는 단어는 북송시대의 중국인들이 만들어 낸 말이 아니다. 몽골인들처럼 지나인들도 결코 알 수 없는 루왜은조리에서의 역사와 배달의 상고사가 그 몽고라는 두 글자에 담겨있기에 그들은 그 이름을 만들어 낼 수도 그 의미를 알아낼 수도 없었다. 몽고는 아카드인들의 후예인 아모리인(Amorite)들이 바빌로니아를 건국하고 그 수호신으로 모신 치우(蚩尤) 천왕, 마르둑(Marduk)에 그 기원을 둔 국호다. 몽고의 고(古) 자는 옛날을 뜻하는 한자 고(古) 자가 아니라 산스크리트어로 황소(bull)를 뜻하는 고(ko)를 한자로 차음(借音)한 글자다. 아카드인들의 수호신 엔릴(Enril), 아모리인들의 수호산 마르둨(Marduk)을 상징하는 동물이 황소(bull)였다. 아카드인들이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모신 환웅, 엔릴(Enlil)을 아모리인들은 치우(蚩尤) 천왕, 마르둨(Marduk)으로 환치해 숭배했다.
그 마르둨이 자신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바빌론의 왕에게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들을 하사하는 부조(浮)에 그 몽고(蒙古)의 진짜 뜻이 있었다. 마르둨(Marduk)은 그 부조에서 바빌론의 왕에게 벼락을 쳐 차(茶) 나무를 자랄 수 있게 하는 번개봉(笏, specter)과 곡척(曲尺, scale), 그리고 나무나 돌에 곧은 줄을 긋는데 쓰는 도구인 먹줄(繩, Ink line)을 주고 있었다. 먹줄 승(繩) 자는 그 뜻 외에도 노끈(실, 삼, 종이 따위를 가늘게 비비거나 꼬아서 만든 끈), 법(法)이나 법도(法度), 바로잡다, 정직(正直)하다, 계승(繼承)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글자인데 현재 몽고(蒙古)라고 오기된 몽골의 원(元) 한자 표기인 몽고(繩古)에 쓰인 글자였다. 몽(蒙) 자는 먹줄 승(繩) 자를 바꿔치기한 글자였다. 먹줄 승(繩) 자를 지금은 솅 [sheng]으로 발음하지만 먹줄 승자는 가는 실 멱(糸) 자의 미([mi] 발음과 영[ying] 발음이 나는 맹꽁이 맹(黽) 자의 발음이 반절법((反切法)에 따라 합쳐져 어리석을 몽(蒙) 자의 멍[meng]과 거의 비슷한 발음이 나는 글자였다. 먹줄을 의미하기에 멍으로 발음되던 繩자가 간편화 원칙에 따라 실 사자 멱이 아닌 그냥 실 사가 되어 셍[sheng]으로 발음되면서 발음이 같은 어리석을 몽(蒙) 자로 변해버린 것은 수메르인인 지나인(支那人)들의 아카드인 들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보기엔 세월도 많이 흐르고 상황도 불가능하게 변했건만 복본(復本)의 맹세를 잊지 않고 지키려는 지라인(氐羅人)들에 대한 지나인(支那人)들의 생각이 반영된 글자가 몽(蒙)이었다. 무지몽매(無知蒙昧)의. 바보는 아니지만 맹하다 할 정도로 고지식하고 완고한 사람을 우리 민족이 맹꽁이라고 부른 이유 또한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고집세고 완고하다는 뜻의 한자가 돌아갈 복(复) 자가 들어간 강퍅할 퍅(愎) 자인 연유다. 그러나 산스크리트어로 고(ko, 古)가 무슨 뜻인 줄 알 리 없던 지나인(支那人)들은 마르둨(Marduk)을 상징하는 황소(bull)를 뜻하는 고(古) 자는 바꾸지 않았다.
아카드인과 수메르인들의 동등한 연합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우리나라(UriNara)‘는 그 국호가 조선이었다. 후일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이성계의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붙였다는 고(古) 자는 그러나 사실이 아니었다. 아카드인들과 수메르인들의 최초 연합 국가인 조선이 건국된 이후 계속된 수많은 ‘우리나라’들은 그 뜻에 어긋남이 없이 항상 아카드를 뜻하는 글자 하나와 수메르를 상징하는 글자 하나씩을 따서 중국과 달리 두 글자로 그 국호를 정하는 원칙을 충실히 따라왔다. 아카드(氐 [di], [zhi])인들 없이 검은 피부의 수메르(月 [lu])인들만으로 건국한 예(濊)와 왜(倭)가 동이전에서 특이하게 한 글자의 국호로 삼국지에 기록된 연유였다. 이런 근본 원칙에 첫 국가인 조선의 국호가 수메르인만을 뜻하는 국호라는 비판이 일게 되었다. 원래 조(朝)라고 하는 글자는 수메르인들이 만든 찻잎을, 한(韓)이라는 글자는 아카드인들이 만든 찻잎을 말하는 낙인(烙印) 역할을 하는 글자들이었다. 수메르를 뜻하는 월(月) 자가 땅 위와 땅 아래에서의 크기가 동일한 차(茶) 나무의 특성을 상형한 龺자와 합쳐진 조(朝) 자는 그래서 수메르가 만든 차(茶)를 나타내는 글자였다. 배달 사건의 교훈을 되새기며 복본 하는 것을 민족의 사명으로 여기는 아카드인들은 배달이 하늘의 법을 위반해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차나무를 뜻하는 龺자에 위배(違背)할 위(韋) 자를 합쳐 한(韓)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내어 수메르의 조(朝) 자에 대응했다. 한(韓)이라는 글자는 아카드인들이 만든 차(茶)라는 것을 알리는 낙인(烙印)이었다. 위배(違背)할 위(韋) 자가 가죽이라는 뜻으로도 쓰이면서 가죽 혁(革) 자는 아카드인들을 상징하는 글자로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가죽 혁(革) 자와 달 월(月) 자가 같이 쓰이면 두목, 으뜸 패(䩗) 자가 되어 국제 관계에서의 패권(霸權)을 장악하는 걸 의미하게 된 연유도 여기에 있었다. 지배하다를 지배(支配)로 쓰는 것도 치 [qi][zhi]로 발음되는 아카드인(氐)과 지[ji]로 발음되는 수메르인(支)이 함께 짝(配)이 되어 협조하면 지배(支配)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그런 함의(含意)를 가진 국호 조선(朝鮮)이 수메르인을 상징하는 물고기가 들어간 선(鮮) 자를 조(朝) 자와 중복해 쓰자 아카드인들의 항의가 제기된 거였다. 아카드인을 상징하는 황소(bull)를 뜻하는 고(古) 자가 조선 앞에 덧붙여진 건 당연했다.
2100여 년의 역사동안 세 번의 천도를 기록한 고조선은 그래서 뚜렷한 그들의 역사를 몽골 초원에 새겨놓았다. 우직하게 그 황량해진 강역을 지키면서 몽골인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남겨놓은 그 유적들을 목숨을 걸고 지켜냈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조선의 첫 번째 수도였던 평양성과 아사달은 몽골인들이 자신들의 국가적 성지로 보존하고 있는 알탄 오부(Altan Ovoo)였다. 몽골 초원을 가로질러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로 펼쳐졌던 차 교역로를 지원하고 통제하고 그래서 결국 장악하기에 최고의 장소인 몽골 고원 한가운데에 흙산을 의미하는 평양을 인공적으로 쌓아 올려 그렇게 했던 조선인들은 그래서 후일 그곳을 흐르는 강에 다리(Dari, 達黎)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카드와 수메르의 연합국가인 ‘우리나라’의 국호 제정의 원칙이 되는 아카드인들과 수메르인들을 상징하는 글자 하나씩을 조합해 두 글자로 만드는 전통이 수립되는 순간이었다. 삼국유사는 평양성(平壤城)이라는 이름과 경운(經云)으로 나무가 하나도 없다는 무엽산(無葉山)이라는 정보까지 추기(追記)해 그 산(山)이 판축기법으로 흙을 단단한 덩어리로 만들어 인공적으로 높이 쌓아 올린 수메르인들의 주도로 건설된 토성(土城)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리고 아사달(阿斯達)이라는 이름까지 기록해 줘 그곳이 수메르인들의 종교시설인 절(寺)이 있었다는 것까지 알려줬다. 아사달은 까만 얼굴을 한 수메르인을 상징하는 아자와 스[si] 발음으로 동일 발음인 절 사자를 오기한 사자, 그리고 산을 뜻하는 달자로 이루어진 단어였다. 아사달은 흙을 다져가며 높이 쌓은 토산 위를 평평하게 다시 다진 다음 그 위 일부 면적에 원형 삼층 단을 쌓아 올린 모습으로 지금까지 몽골인들에 의해 국가적 성지로 보존되고 있는 알탄 오부(Altan Ovoo)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단어였다. 알탄(Altan)은 산스크리트어로 제사(ritual)를 모시기 위해 제물과 제단등을 마련(al=to adorn)하고 제사를 거행(tan=to perform)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고 오부(Ovoo)는 신성한 돌무지 또는 돌탑을 의미하는 몽골어다. 고조선의 22세 색불루 단군과 44세 구물 단군 때 등장하는 장당경은 바로 이 알탄(Altan) 오브(Ovoo)로 신성하게 보존되고 있는 원형 삼층 제단이 있는 평양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기원전 2350년경에 메소포타미아로 수메르인들의 과도한 지배력을 통제하기 위해 배달국 신시를 떠났던 아카드 사르곤 대왕의 정벌군중 일부가 기원전 2150년경부터 신시 부근으로 귀환해 들어오자 평양(平壤) 위에 지은 달려성(達黎城)에 평화로이 머무를 수 없었던 조선의 조정은 배달국 도읍 신시의 서남쪽에 있던 칸헨티 남부의 백악산(白岳山) 아사달로 천도했다. 이때 메소포타미아에서 돌아온 아카드인들의 강력한 요구로 수메르인들의 상징어로만 채워졌던 조선의 국호에 아카드의 상징인 황소를 뜻하는 고(古, ko) 자가 추가되어 국호는 조선(朝鮮)에서 고조선(古朝鮮)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의 도읍이었던 평양 아사달과는 달리 고조선으로 개칭된 이후 도읍이었던 백악산 아사달(白岳山 阿斯達)을 삼국유사가 궁홀산(弓忽山)이라 기록한 것은 이 산에 위 사진과 같은 단군의 왕권을 상징하는 지팡이(sceptre)가 꽂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지팡이는 바빌로니아의 부조에서와 같이 환웅과 동일한 신격을 가진 마르둨이 단군 왕검에게 그 왕권을 수여하며 주는 홀(笏)이었기에 삼국유사는 이 백악산 아사달을 궁홀산(弓笏山)이라 기록한 것이었다. 백악산 아사달을 금며달(今㫆達) 또는 금미달(今爾達)이라고도 했다고 기록한 것은 수메르인들이 아사달이라 부른 그곳을 아카드인들은 금미달(今彌達)이라고 불렀기 때문이었다.
수메르인들을 아(阿)나 오(烏) 자로 상징하면 아카드인들은 미(爾)와 란(蘭) 자로 상징했다. 나(na)와 라(la)로 수메르인과 아카드인을 구분해서였다. 고조선의 뒤를 이은 부여(扶餘)는 푸위[fu yu]라고 발음되는데 그러나 그를 한자로 쓰면 扶餘가 아니라 돌아갈 복(复) 자와 고기 어(魚) 자가 쓰인 국호였다. 돌아갈 복(复) 자는 배달과 복본을 강조하는 아카드인을 상징하는 글자요 고기 어(魚) 자는 수메르인을 상징하는 글자였다. 아카드인들의 수호자인 엔릴(Enlil) 또는 마르둨(Marduk)이 뿔로 특징되는 황소(bull)로 상징되듯 수메르인들의 수호자인 엔키(Enki) 또는 에아(Ea)는 물고기로 상징되었기 때문이었다. 숙신(肅愼)은 문자 창제를 상징하는 붓 사(肀) 자와 물의 신인 엔키와 관련 있는 못 연(淵) 자가 합쳐져 수메르를 가리키는 숙(肅) 자와 아카드를 상징하는 삼갈 신(愼) 자가 조합된 국호였다. 신(愼) 자는 황소의 뿔을 상형한 삼갈 신(昚) 자의 본자였다. 머리에 황소 뿔이 있는 신농(神農)은 원래 神農이 아니라 昚農이었다. 황소의 뿔을 상형한 것으로 보이는 삼갈 신(昚) 자는 덮을 개(蓋) 자의 옛날 글자와 모양이 같은 글자였다. 궁홀산(弓笏山), 금며달(今㫆達) 또는 금미달(今爾達)이라 불린 백악산 아사달을 개마대산(蓋馬大山)으로 부르는 연유였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아카드인과 수메르인들의 연합으로 이뤄져 온 나라였고 그것이 그 어떤 다른 국가들 하고도 차별성을 가지는 독보적인 특징이었다. ‘우리나라’의 강역은 지금은 다리강가(Dariganga)라 불리는 평양(平壤)을 중심으로 동으로는 흥개호(兴凯湖, Lake khanka)까지 서로는 신강성 우름치(Ürümqi 乌鲁木齐市)까지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