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韓)이라는 글자의 좌변(左邊)에 있는 龺이라는 글자는 차(茶) 씨앗을 품은 새(鳥)의 하얀 오줌똥 속에서 싹 튼 차(茶)나무가 땅 위와 땅 밑으로 커 나가는 모양을 상형(象形)한 글자이다. 龺 자의 가운데에 있는 글자는 날 일(日)자인데 日 이란 글자의 옛날 형태 즉 고자(古字)를 살펴보면 입 구(口) 안에 새(鳥, 乙)가 들어 있는 글자들이었다. 즉 日 이란 글자는 태양을 뜻한 것이 아니라 차(茶) 씨앗이 싹 튼 한정(限定)된 땅 속을 뜻하는 것이었다.
차(茶) 나무는 아무데서나 자라는 나무가 아니었다. 차(茶)나무는 아무데서나 자랄 수 있는 나무가 아니었다. 차(茶)나무는 싹(丶)을 틔우고 자라는데 많은 질소(窒素:Nitrogen)를 요구했다. 그래서 차(茶)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고 질소(窒素) 가득한 단백질(蛋白質)의 오줌똥 속에 자신의 씨앗(丶)을 담아 배설해 줄 새들(鳥,乙)을 기다린다. 까치 같은 새들은 차(茶)씨앗을 틔워줄 만큼 충분한 질소(窒素)를 배설(排泄)하지 못한다. 큰 새들은 차(茶)열매를 찾을 필요 없이 살아있는 동물들을 먹으면서 필요한 단백질을 섭취(攝取)할 수 있다. 그래서 차(茶)나무는 늘 까마귀(烏)를 기다렸다. 새들의 오줌똥이 하얀 것은 그 안에 들어있는 단백질(蛋白質) 성분 때문이었고 단백질은 질소(窒素)덩어리였다. 차(茶)나무가 그토록 원하는, 공기 중에 널려있는 질소(窒素)들은 그러나 차(茶)나무엔 그림의 떡이었다. 사용할 수가 없었다. 두 개의 질소(窒素)가 너무나 강력하게 붙어 있어 뿌리에서 빨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茶)나무는 벼락(申)을 좋아했다. 벼락(申)은 강력하게 붙어 있는 두 개의 질소들을 서로 떨어 뜨려 하나의 질소(산화질소:NO)로 만들어 주었다. 차(茶)나무는 벼락(申)과 함께 하는 비(雨)를 너무 너무 사랑했다. 벼락(申)의 힘으로 서로 떨어진 질소(N)가 대기 중의 산소(酸素:Oxygen)와 결합해 산화질소(酸化窒素)가 된 상태에서 비(雨)가 내리면 빗물에 있는 수소(水素:Hydrogen)와 결합해 암모니아(Ammonia NH3)로 땅에 떨어져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절박한 이유로 차(茶)나무는 폭풍(暴風:Storm)이 자주 치는 땅에서만 잘 자랐고 그런 차(茶)나무가 반드시 있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래서 폭풍(暴風)을 신(神)으로 숭앙(崇仰)했다. 신(神)은 비와 함께 하는 번개(電)를 꼭 보여(示) 주어야 하는 존재가 된 것은 이런 연유였다.
차(茶)나무는 뿌리가 표토(表土)와 심토층(深土層)을 거쳐 암반층(岩盤層)을 향해 곧게 직선(直線)으로 내려가는 직근성(直根性)이라는 것이 특징(特徵)인 식물(植物)의 왕이다. 주간(主幹)이 10미터인 교목성(喬木性) 차(茶)나무의 뿌리는 최소 20미터 이상 곧게 땅 밑으로 뻗어간다. 한(韓)이라는 글자의 좌변(左邊)에 있는 龺이라는 글자는 결국 차(茶)나무의 씨앗(丶)이 땅 속에 심어져(口) 뿌리와 줄기가 땅 위아래로 자라나는 과정을 회의(會意)와 상형(賞刑)의 원칙으로 표현하고 있는 글자다. 천부(天符)는 그래서 차(茶)나무를 말하는 것이다. 지유(地乳)만 먹으라고 한 이유도 물이 더러워서였다. 소뿔이 달린 신농(神農)이 제일 처음 차(茶)의 효능(効能)을 발견하는 것도 해독제(解毒劑)로서의 찻잎(茶葉)이었다. 해독제(解毒劑)로 사용할 수 있는 잎은 차(茶)나무 잎(葉) 말고는 없다. 차(茶)로 달여 먹을 수 있는 잎도 차(茶)나무 잎 말고는 없다. 천부(天符)의 부(符) 자에 있는 점 주(丶)자는 찻잎을 나타내는 것이다.
죽은 제갈량(諸葛孔明)에게 휘둘렸다는 사마중달(司馬仲達)의 후손(後孫)들이 황제(皇帝)로 있던 진(晉)나라 때에 역사가로 활동했던 진수(陳壽)가 270년경에 편찬(編纂)한 삼국지(三國志)중 권(卷) 30에 있는 위서(魏書)에는 한(韓)이 대방(帶方)의 남쪽에 있었고 남쪽은 왜(倭)와 접했으며 사방(四方) 사천리(四千里)나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라였다고 기록했다. 산동반도와 대만, 일본과도 모두 땅으로 연결되어 있어 제잠(鯷岑)과 근역(槿域)이라 불리던 나라였을 것이다. 지금은 동지나해와 서해, 남해로 모두 바다가 된 땅 때문에 서로 남남이 되어버린. 그렇게 애초에는 땅이었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바닷물에 차(茶)나무들이 잠겨 전후를 모르는 중국인들이 보기에는 물 밑에서 자라 물 위로 솟아오른 나무처럼 보였기에 이 나무를 부상(扶桑)이라 했을 것이다. 사방(四方) 사천리(四千里)나 되는 어마어마한 땅에 마한(馬韓)과 진한(辰韓)과 변한(弁韓) 이렇게 삼종(三種)이 있으며 진한(辰韓)은 옛날 진국(辰國)이라고 삼국지 위서 동이전은 밝히고 있다. 월지국(月支國)은 마한(馬韓)에 속한 오십여국(五十餘國)중 하나이지만 진국(辰國)의 왕인 진왕(辰王)이 월지국(月支國)을 통치했다고 기록해 놓았다. 결국 월지국왕(月支國王)이 진왕(辰王)이고 월지국왕인 진왕(辰王)은 마한, 진한, 변한으로 이루어진 삼한(三韓)을 하나로 부를 때 쓰던 진국(辰國)의 왕(王)이다 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월지국왕(月支國王)이 삼한을 영도(領導)하고 있다고 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의 반열(班列)에 함께 있는 역사가(歷史家) 진수(陳壽)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했다. 진한(辰韓)의 왕인 진왕(辰王)과 월지국왕(月支國王)인 진왕(辰王)의 구별을 확실히 하기 위해 부연 설명까지 붙여 놓은 연유였다.
...사로국(斯盧國), 우유국(優由國)이 있어서 변한(弁韓)과 진한(辰韓)의 합계 24국이나 된다. 이중에서 12국은 진왕(辰王)에게 신속(臣屬)되어 있다. 진왕(辰王)은 항상 마한(馬韓) 사람으로 왕(王)을 삼아 대대로 세습하였으며 진왕(辰王)이 자립하여 왕이 되지는 못하였다.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 方可四千里. 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辰韓者, 古之辰國也. 馬韓在西. 其民土著, 種植, 知蠶桑, 作綿布. 各有長帥, 大者自名爲臣智, 其次爲邑借, 散在山海間, 無城郭...月支國...凡五十餘國. 大國萬餘家, 小國數千家, 總十餘萬戶. 辰王治月支國. 臣智或加優呼臣雲遣支 報安邪 支 臣離兒不例拘邪 秦支廉之號. 其官有魏率善·邑君·歸義侯·中郞將·都尉·伯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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